어머니의 병상일기

송광사 가는 길

情人 2020. 1. 6. 10:59



 

 

 

  

 송광사 가는 길

 

 

 

 

 

천 송광사 하면 언듯 유명한 비사리구시

싸리나무 밥통이 생각 나겠지만

나에게는 엄마를 만나러 갔었던 그날 일이

주마등처럼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내 나이 5살 어린아이 입니다.

오늘은 엄마를 만나러 송광사에 가는 날 입니다

웽~웽~

귀가 따갑도록 매미가 울어대는 무더운 한여름,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를 하고 그토록 애타게

보고 싶었던 엄마를 만나러가는 길이라 셀레임에

마음은 벌써 달려가 엄마를 만나고 있었습니다.

어제밤에도 엄마를 만난다는 생각에 잠도 제대로

못잤습니다.

 

순천에서 송광사까지 들어가는 길은 비포장 도로에

신작로는 나 있었지만 차는 다니지 않았습니다.

십리도 넘는 그 먼길을 걸어서 찾아가는 동안 지나가는 자동차는 한대도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무더운 여름 해는 구름에 가린날,  검정고무신에 

반바지 차림의 어린 판길이는 아버지의 손을잡고

머리속엔 오직 엄마를 만난다는 설레임만 가득하여

겅중겅중 뛰며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인적이 없는 도로에는 매미소리만 찡 찡 들려올 뿐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도 하나 없었습니다.

지금은 어떤 지명으로 불리는지는 모르지만

내머리속에 각인된 기억으로는 

'낙수' 라는 곳에 이르러 시원한 냇물에 얼굴을 씻고

발을 담구며 그늘에서 잠시 쉬었다 또다시 설레이는 마음으로 걷습니다.

 

얼마를 더 걸어가야 하는지도 모르는체 또다시

길을 떠나는 아버지와 어린아이,

먼길을 가는 동안 아버지는 내손만 잡고 걸으며

말이 없었고 그저 혼자만 좋아라 했던 것 같습니다. 

 

점심을 먹지 않았어도 배고프다는 생각보다는

어서빨리 엄마를 만나야 겠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물만 마셔도 배가 불렀습니다.

바람소리 하나없는 매미들의 합창, 길에 떨어진 죽선부채를 하나 줏어서 그것을 접었다 폈다 팔랑팔랑 부치며 걷는것이

먼길을 가는 내내 나와 유일한 놀이 였습니다.

 

아버지의 잦은 주사에 시달리던 엄마가 가출을 하여

송광사 절에 들어가 부엌일을 도우면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누나들이 은밀히 엄마를 만나고 오면서 사실을 알아낸 아버지는

엄마가 제일좋아하는 판길이를 앞세우고 찾아갈 궁리를 한 것 이었습니다

설마 판길이가 찾아 왔는데 나타날 것 이라는 생각 이었겠지요

 

 

 

 

 

절 입구에는 징검다리로 놓여있는 돌짝 사이로 물이 흘러가고 있었고

그위 아치형 돌다리위의 열린문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경내에 들어서자 왼쪽에 깨끗하고 넓은 흙마당이 있었고 무더운 바람만 바닥에 흙먼지를 날리고 있었습니다 .

 

유일하게 매점이 하나 있을뿐 승용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조차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요하고 적막 했습니다.

 

 

" 판길아 나는 여기 있을거니까

저기가서 아줌마 보고 판길이라고 말하고 엄마를

만나러 왔다고 해라~~"

엄마가 이곳에 있단다.

 

엄마가~~

 

가슴이 터질듯 기뻤습니다.

 

 

" 아이고 니가 판길이구나~ "

매점의 아줌마는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나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 근디 어쩐다냐 니 엄마 여기 없는디~~

 

다른데로 갔단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더 이상 움직일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멈춘듯 정적만 흘렸습니다.

솟구쳐 나오는 눈물만 볼을타고

줄 줄 흐르고 있었습니다.

~~

드디어 엄마를 만나게 되는 설레는 순간 이었는데,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던 어린가슴은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고개를 떨군 땅바닥에는 눈물만

뚝 뚝 떨어졌습니다.

 

 

아버지에게 돌아 왔더니

이것들이 거짓말 한다면서

얼굴이 무섭게 굳어지고 가져온 술병을 꺼내어 그냥

들이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술을 드시지 않았는데

감추었던 본색이 드러난 것 입니다.

 

그때부터 어린 판길이는

버려진 돌멩이처럼 관심 밖이었고

아버지는 화가난 마음에

술만 들이 마시는 시간 이었습니다.

 

엄마를 만나러 왔는데...

엄마는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나는 술을 마시는 아버지가 무서워서

저만치 떨어진 건너편 커다란 바위에

웅크리고 앉아 그런 아버지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사람하나 없는 매점앞 텅빈 마당에

마주보며 앉아있는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는 술병을 손에들고 소릴지르고,

아이는 저만치 떨어져 앉아 울고있는 처량한 모습에...

이 광경을 지켜보고있던 매점의 아줌마도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아줌마가 빵을 하나 들고와 내밀었습니다

" 판길아 이거 먹어라" 하며 내미는 아줌마의

손을 팔로 밀어내며 받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모든게 다 싫고 울고만 싶었습니다.

아들이 찾아 왔다는 소식을 듣고 선듯 나타나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아리고 아팠을까요

 

나중에 알게 된 일인데

아버지가 찾아온다는 말을듣고 아침부터

엄마는 더 깊은 암자로 숨어 버렸답니다. 판길이가

이곳에 왔다는 소식도 들었지만 도저히 나타날 수

없었다고 합니다.

~~

 

그 곳에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 누구도

아버지에게는 말을 붙이지 못했었고

하루해가 뉘엇뉘엇 나무숲 뒤로 넘어가고

 노을이 질 무렵에야 일어나시는 아버지,

판길아 가자!!

아버지 손에 이끌려 송광사를 튀로하고  

걸어 나왔습니다.

 

엄마의 숨결이 있을것 같은 생각에 계속 뒤를 돌아보며 긴 그림자를 끌고 눈물을 훔치며 걷는아이

저만치 혼자 앞서가는

아버지를 종종걸음으로 뒤따라가는 아이 였습니다.

 

그날 점심은 먹지 않았고 져녁도 먹었던 기억이 나지않습니다.

울며 울며 또 어떻게 밤길을 걸어서 여수까지 왔는지

그 뒤는 생각이 안납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괴롭다고 술집에서 술을마시고

난 그옆에 앉아서 아버지가 일어날때까지

기다리고 있었겠지요

 

 

이 글을 쓰는 동안 몇번이고 흐르는 눈물 때문에

글쓰다 멈추기를 반복했습니다.

오십구년 전의 일이지만 그때 그순간의 기억이

희미해지지도 않고 생생하게 떠오르는건 어린마음에

그 만큼 칼로 도려내듯 마음에 상처가

컸다는 이유도 담겨 있겠지요.

 

 

2020.01.04일 새벽에

 

 

 

 

어머님기일 음: 12.17

아버님기일 음: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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