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병상일기

[31] 2004년 따사로운 봄햇살에

情人 2016. 3. 28. 11:29

 

 

      2004년 따사로운 봄햇살에...
      햇볕을 가려보려고 머리에 두른 수건아래 드러나 보이는
      어머니의 얼굴은 봄이되면 까맣게 그을렸다
      아침식전 일찍부터 해가질때 까지 어머니는 거의 옥상에서
      혼자 화초를 가꾸며 시간을 보내셨다. 퇴근후 내가 귀가하여
      과일을 씻어서 들고 올라갈때 까지...
      무슨 꽃 화초들을 심었는지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으나 그해 봄에는
      국화중에도 향이 가장 좋다며 단추국화를 밭에다 가득 심었던
      기억이 난다.
      그해 9월에 병환으로 몸져 누으면서 언제나 당신의 생활터전
      이었던 그곳에는 이제 더 이상 올라가지를 못하셨다
      여름을 지나며 하루 두번 물주기로 화초는 풍성하게 자라났지만
      어머님은 점점 더 쇠약해지시고 이제는
      생의 마지막을 향해 달음질 하고 계셨다.

      병원과 집을 번갈아 가며 숨가뿌게 치료를 해봤으나 회복 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어느덧 11월 하순이 되었다.
      이제 가을은 끝나가고 옥상에는 봄에 심어놓은 국화가 노란꽃으로
      변신을 하여 화단을 온통 뒤덮었다. 보아주는 이 없는데 꽃향기를
      바람에 철철날리고 있었다.
      이제 생애 마지막 가을이 될 옥상풍경을 어머님께 꼭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 위험한 용기를 내게 만들었다
      어머님을 등에업고 좁고 위험한 옥상계단을 하나하나 조심스레 올라갔다.
      각별히 신중하게 했었건만 마지막 계단의 담벽에 어머님의 이마를 쿵
      부딪혀 피가 번져나왔다.
      아찔했다 만약 순간 내가 업은손을 놓았더라면..
      낙상하지 않은 걸 천만 다행으로 생각하고 가만히 평상에 앉혀드리고
      꽃을 보라고 고개를 돌려드렸다.

      "보세요 좋지요?  어무니가 심은 모종이 이렇게
      많은꽃이 피었자나요"

      세상 모든것을 다 내려놓은 듯 그것들을 바라보고도 아무 말이없다
      촛점 잃은 시선을 바닥에 던져놓은체 무거운듯 고개를 떨구고
      아무런 반응이 없다.
      뭐라 한마디라도 해주셨으면 좋으련만 눈가에 물기가 어린다.
      그래도 나는 어머님께 이것들을 보여드렸기에
      아무 여한이 없다. 다행이 혼자 앉아 있을수 있는 시기라서
      앉아있는 모습을 요리조리 사진을 찍었다.
      어머님을 보내드리기 전 임종때까지 모든 일상들을 일일이
      사진으로 담아두고 있었다.

      이듬해 일월말에 어머님은 조용히 세상을 띠나시고... 나는
      그런 옥상을 그대로 방치해 놓은체 그 해에는 아예 올라가지를 않았다.
      당신의 손길이 지나간 흔적들을 쳐다보기도 싫어서 였다
      언제나 포도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아랫동내를 말없이 내려다 보고 계시던 그림하나가
      이젠 그속에 어머님 모습이 보이지않는
      생명잃은 수채화 그림이 된것이다

      십년이 훌쩍넘게 지나가버린 지금
      나는 해마다 기일이 지나고 삼월이 시작되는 이맘때면
      봄 우울증으로 연례행사처럼 마음깊이 몸살을 앓는다.
      어머님 생각이 가장 많이나는 계절이다.
      생각을 떨어 버리려 애를써도 찬바람속에 스며드는 따스한 봄햇살을
      느낄때면 순간순간 어머님 생각이 나서 나를 슬프게 한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지나야 이 우울증에서 벗어 날수 있을지...
      차라리 나에게 봄이라는 계절이 없었으면 좋겠다.

      2016.02.20.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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