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병상일기

[28] 관절염과 포도송이

情人 2016. 3. 24. 22:52

 

 

          슬초, 황기, 다래, 골쇄보, 접골목, 오가피, 엄나무, 두충, 홍화씨, 알로에..

          이 약초들은 모두 관절염에 좋은 약재료 들입니다.
          옛날 그때에는 이런 약초들을 검색해서 찾아볼 생각도 않았습니다
          어머님은 관절염으로 참 많은날을 고생 하셨습니다.
          무더운 여름

           다리를 끌며 혼자서 지팡이를 짚고 병원으로 집으로
          치료 받으러 다니셨습니다.
          이것저것 좋다고 하는 온갖 민간요법을 알아내어 누구에 도움없이
          혼자서 치료하며 많은 날들을 그렇게 보내셨습니다.
          그래도 좀체 호전이 되지 않는 퇴행성 관절염..

           

          어느날 오후 욕실에 들여놓은 연탄 화덕에 푹 삶고 있는 찜통속의 물체,

          뚜껑을 열어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를 허옇게 드러내고 있는 고양이 대가리가 보이는 것 이었습니다.
          관절염에 고양이가 좋다는 말을 듣고 구포장에서 고양이를 사다가
          한나절을 삶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고양이 까지 삶아서 드셨을까?
          그후로도 여러마리를 구해서 고아 드셨습니다.
          그때에는 어머님을 위하여 약재료들을 찾아볼 생각도 않했습니다.
          언제나 친구들을 만나 놀러 다니느라 바빴으니까요.


          우리집 옥상에는 제법 오래된 청포도 나무가 한그루 있습니다.
          해마다 포도를 수확했는데 거름이 잘된 해에는
          포도를 7Kg이나 딴 적이 있었습니다.
          지난해에 포도가 달리지 않아서 올해에는 수많은 포도송이가 조랑조랑
          맺혀 있었습니다. 하얀 가루로 화장하고 알송이를 키우기 위해 알알이

          수액을 끌어올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을 즈음. 어머님은 익지않은
          포도를 찧어서 무릎에 붙이면 관절염에 효험있다는 말을

          어디서 듣고 오셨습니다.


          "그럼 마침 옥상에 포도가 달려있으니 그거 몇개 따서 사용해 보세요".

          그날, 퇴근하여 돌아온 나는 망연자실 하였습니다.
          어머님은 포도나무에 달린 포도를 이제 막 형성되는 포도송이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따 버린 것이었습니다. 실험 삼아 몇개따서

          찧어 붙여 보시라 했더니만....

          잘못 이해 하시고 모두 다 따버렸습니다.
          화를낸다고 소릴 지른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었지만

          부화가 가라 앉을때 까지 했던말을 또하 고 또하고 계속 잔소리를
          해 댔습니다. 당신은 잘못을 인정하기에 아무 소리 못하고
          싫은소리를 한참 동안이나 다 듣고 계셨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참다 참다 도저히 못 참겠다는 것이었지요.

           

          " 야! 이 못된 자식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미 따버린걸 나더러 어쩌라고~
          어미를 종년 잡지듯 잡지고 있어 못된 놈이"

           

          나는 어머님의 호되게 꾸짓는
          그 말 한마디에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옥상에 올라가 포도나무를 바라볼 때면 한번씩 그때
          그 일이 생각이나 어머님모습을 떠올리며 혼자 회한의 미소를 짓습니다.

          이미 다 따버린걸 어쩌라고

          그땐 왜 그리 어머니에게 화를 냈을까...

            2015.5.23. - 정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