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가을햇살이 키작은 들풀위에 앉아 졸고 있습니다.
적막한 산소에 바람소리마저 숨을 죽이는 한 낮 입니다. 장마가 오기
전에 심어 두었던 배롱나무는 잘 자라서 잎이 무성 하였습니다.
한동안 찾지 않았던 탓에 그사이 쭉쭉 삐져나온 강아지풀들이 길게
목을 빼들어 하늘 거리고 제멋대로 자란 풀들은 무성하게 묘지전체를
덮고 있었습니다.
묘지위에 머리카락 처럼 수북이 자란 풀들을 한웅쿰 모아잡고 가위로
자르고 또 한웅쿰 모아잡아 자르고 얼레빗으로 쓸어 올려가며 또
모난곳을 자르고 이쪽저쪽 견주어 보며 다듬고 한참 후에야
컷트작업이 모두 끝이 났습니다.
살아생전 어머님 성품처럼 정결하고 단아하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아무도 봐주지 않지만 단정하게 다듬는 건 제 마음이니까요.
지난 날 병원에서…
아침햇살 드리우는 창가 침대 위에서 얼굴을 씻겨드리고 나서 풀향기가
나는 로션을 발라드렸습니다. 곱게 머리를 빗기고 휠체어에 앉히셔서
바깥마당으로 나오면 좋아라 하며 환한 미소를 지으시던 그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집니다.
언제부터인가 어머님 산소에 찾아오면 혼자 중얼거리는 버릇이
생겨 났습니다. 가신 당신과 대화하듯 한참을 혼자 중얼거립니다.
어머니 죄송해요. 어차피 떠나실 당신을 편하게 보내 드리지 못하고
아집으로 붙잡아 두고 고통의 시간만 연장시켜 드렸던 그 날들이..
왜? 그다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생명을 연장 시키려 하는지 의아해
하시는 담당의사 선생님, 그냥 편하게 보내드리자는 의사의 권고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나의 고집 때문에 어머님의 고통은 길어졌습니다.
힘겨운 섹션과 의식조차 희미해지는 당신을 조금이라도 더 내 곁에
머물게 하려고 붙잡아둔 저에 욕심이 어리석었을까요.
마지막 이별하는 날 까지 4개월의 병원생활 그 짧은 나날들이 저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안타까운 시간들 이었습니다. 그 기간만 이라도
생명을 연장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리고 죄송해요.
" 정인아 그래도 난 니가있어 행복했다. 형제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라
너하고나 단 둘이만 산다고 생각해라"
힘없이 침대 옆에 엎드려있는 내손을 가만히 잡으며 말씀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말문을 닫기전 마지막으로 내게 했던 말씀 이었습니다.
가슴이 아려오며 눈물이 솟구칠때 검은 양복의 어깨위로 따가운 햇살이
살속깊이 파고 들었습니다.
2006. 9. 29. 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