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조명등이
약하게 드리워져 적당한 무드를 조성하고 있는 작은 방으로 인도를 받은 두 남자는
먼저 양말을 벗고 낮은 침대위에 나란히 걸터 앉았다.
안내를 해 주던 청년이 밖으로 나가고 곧 이어 문이 열리며 내 딸보다 더 어린
두 소녀가 환한 미소를 머금고 사뿐 들어왔다.
손에 들고온 목재대야를 내려놓고 그 안에 발을 담그라고 한다.
이 중국 소녀들은 근무에 필요한 약간의 한국말은 배워 두었나 보다.
코 끝으로 전해지는 그윽한 약초의 향 내음에 마음이 풀리며 기분이 좋아진다.
알 수 없는 약초를 우려낸 진한 갈색의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동안
그 따스함이 스르르 온몸으로 전이되어 여행의 피로가 풀려 나는듯
시원함을 느낀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발을 들어올려 수건으로 감싸서 천천히 닦아낸 다음, 대야를 들고 문 밖으로 나간다.
두 남자는 그대로 드러 누워서 약간의 설레임으로 다음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아 들을수 없는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다시 들어온 그들은 각자
한사람씩 발밑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발에 오일을 발라 천천히 문지르기 시작한다.
엄지 발가락은 잡아 당기고 발바닥을 꾸욱 누르고 주무르고 또 문질러 댄다.
아 파 요?
하며 어눌한 한국말로 한 번씩 물어 보는데 그 시원함에 눈이 절로 감긴다.
베이징 여행의 첫날, 발마사지를 받으며 누워있는 동안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5원짜리 하얀동전 하나가 문득 생각이 난다.
판길아 발좀 해 주라!!
숙제도 해야 하고 나름대로 할일이 많은데 오늘도 내가 표적이 되었다.
일곱형제 중에 내가 제일 실력이 나아서도 아닐 것이다. 엄한 아버지의 말 한마디엔
거부할 엄두조차 못내던 그시절, 지독하게 하기 싫은 일 이라도 아버지의 명령
이라면 이유없이 복종해야 한다.
그래도 매번 그에 따른 수고의 대가가 따라오니 그도 별반 나쁘지는 않았다.
누워 계시는 아버지의 발 아래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내 무릎위에 아버지의
발을 올려 놓는다.
못쓰게 된 펜대를 잘라 다듬어 놓은 작은 기구하나가 손이 닿는 가까운곳에 항상
놓여져 있다. 일본순사에게 붙들려 가서 억울하게 고문을 당하고 돌아오신
그후 부터 동상으로 간간이 발이 가렵다고 하신다.
발가락은 뜯고 발바닥은 긁고 뒤꿈치 부분은 꾹꾹 찍고 형에게 전수받은 방법으로
아버지 발밑에 앉아서 발 마사지를 해 드리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손님이라도 들이
닥치면 창피함을 느끼셨는지 얼른 하던작업을 중단 시킨다.
한쪽발의 작업이 끝나고 다른쪽 발로 옮겨갈 즈음 슬며시 한쪽발이 위로
올라가는가 싶더니 엄지 발가락 사이에 오원짜리 동전 하나가 끼워져서 슬그머니
다시 내려온다. 무언으로 다른가족들이 모르게 수고의 댓가를 주고 받는 것이다.
이 돈으로 이번에는 무엇을 사먹을까 생각을 하면서 작은
손끝에는 더욱 힘이 들어간다.
중국소녀는 연신 종아리까지 주무르며 작업에 열중이고 눈을 감고 누워있는 내 머리속
에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해 드렸던 그 작업이 바로 발마사지의 원조 였었구나
하는 생각에 연신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소녀는 자신의 마사지가 만족스러워서
흐뭇해 하는줄 알고 "시원 하세요?"
다 끝났습니다. 하며 미소 섞인 말을 던진다.
자리에서 일어나 오원짜리 동전이 아닌 1달러의 지폐한장을 팁으로 건네주었다.
두손으로 공손히 받아들고 "감사 합니다!"
라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오는데 아득히 기억에서 멀어진 어린시절 그때 일이
다시한번 떠올라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지어진다.
2010. 5. 28. 북경 발마사지 샵에서
- 정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