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병상일기

[20] 지워진 풍경하나

情人 2007. 11. 18. 06:34

 


       우리 가족에게 옥상은 작은 쉼터였다.

      그 중에서도 어머님은 하루에 많은시간을 이곳에서 보내셨다.
      서양의 멋진 옥상정원은 아닐지라도 잘 정돈된 화초들과 의자는

      참 좋은 풍경중의 하나였다
      옥상에서 생활하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으셨다.

      집안에 어머님이 보이지 않을때면 언제나 옥상에 계셨다.
      늘상 포도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서 여중학교 마당을

      내려다 보고 계셨다. 그 풍경이 마치 벽에걸린 그림을 보는것

      처럼 언제나 똑같았다.

       
      내성적이고 맑은 성격에 친구가 없는 조용한 어머니.

      그래서 옥상은 좋은친구와 같은 어머님의 세상 이었다.

      계절마다 어머님의

      손길에 따라 여러가지 꽃들이 피어났다.
      과일을 무척 좋아하시는 어머니. 퇴근하며 사가지고온 과일,
      어머님이 옥상에서 내려 오시기 전에 얼른 씻어서 가지고
      들고 올라갔다. 즐겁게 드시는 모습이 보기좋아서 나는 늘상

      그런일을 반복 했었다.


      퇴근하고 집으로 들어오면 어머님이 고개돌려 반겨주는
      작은 설레임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가벼운 떨림~ 이젠 그런일이 없어졌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혼자 중얼거리는 일들이 많아 진다고 하더니

      이젠 내가 어머님이 앉아 계셨던 그 의자에 앉아서 혼자 중얼거리고 있다.
      지난날 어머니가 그랬던거 처럼....


      지금의 옥상은 예전같지가 않다.  잘 가꾸어진 화초들은 보이지
      않고  스스로 매달렸다 따는 사람이 없어 바닥에 떨어진 포도알들, 

      한쪽구석엔 낙엽들만 수북히 쌓여있다.

      응당 앉아 계셔야야 할 그곳에는 이제 어머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포도나무 아래 파란의자는 그자리 그대로 놓여있는데 그 위의 사람

      하나가 지워지고 없는 것이다.

       
      아직도 마음 한구석이 휑 하니 뚫린 허전함과 그리움,

      그 빈  자리을 아내가 메꾸어 볼려고 노력 하지만 나에겐 아직 그 자리가

      그 누구도 채울수 없는 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
      날씨는 점점 차가워지고 벌써 떠나가신지 일년이 되어간다.

       
      어제밤에 찾아 갔었던 산소에는 봄에 씨를 뿌려놓았던 금송화

      꽃 들이 커다란 울타리를 이루며 엄청스레 많이도 피어나서

      나를 반겨 주었다.

       
       
       
       
                                                                              2005.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