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북경

천안문 광장 (天安門 廣場) 천안문사건의 현장을 밟다

情人 2011. 9. 1. 03:50

 

 

천안문(天安門)
명나라 영락제15년 (1417년)에 건립됬다
면적이 44만m2여서 100만명의 사람들을 수용하여 집회를 거행할 수 있다
1949년 10월1일 마오쩌둥 주석은 천안문 성루에서 새로운 중국창건을 선포했다
정면에는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있다.

 

 

 

 

마오주석(모택동)기념관

모택동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곳,
중심건물인 베이타팅의 정중앙에는 백옥으로 만든

높이 3.45m의 좌상이 있다.
뒤에는 너비23.74m높이6.6m의 배경화가 있다.
중앙홀에 마련된 배례실 한가운데 오성홍기로 감싼 마오주석의

유체가 담긴 수정관을 볼 수 있다.

이 수정관은 약0.8m 두께의 검은 화강암 판석위에 놓여 있으며
그 주변은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로 장식 되어있다.
관은 흑색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카메라의 휴대가 절대 금지된다.

 

  마오주석(모택동)기념관 을 관람하기 위한 줄이다.

길어지면 수백미터에 이를만큼 길다.
여행자 들은 정해진 동선을 따라 움직이면 된다,

 

 

정양문(正陽門)
일명 전문 이라고 부르는 정양문은 천안문광장 남단에 위치하는 황성의 남문이다.

과거 베이징은 9개의 성문을 통해 일반인들의 주거지와 황성 중심부를 구분 하였는데

이 전문이 바로 그 남쪽 출입문 이었다.

 

정양문(正陽門)

 

 

민영웅기념비
중국인민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유. 무명

혁명영웅들을 기리는 뜻에서 건립 되었다.
1952년 만들어진 기념비는 37.9m높이로 화강암과 백옥으로 만들어 졌다.
비석 위에는 마오쩌둥의 친필로

인민영웅수불후人民英雄垂不朽

(인민영웅은 썩지않고,영원히 드리운다) 라는 8글자가 쓰여있다

 

 

 

 

국역사 박물관
이곳에서는 30여만점에 이르는 방대한 유물을 통해 반만년 중국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다.
박물관에는 '베이징인'의 화석과 상나라의 사모무정,갑골문자 등
매우 희귀한 고대 유물들이 가득하여 인기 관광코스가 되고있다.

 

 

안문 광장(天安門廣場)
북경시내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천안문광장은 중국현대사를 고스라히 지켜본 현장이다.
1919년 5.4운동시 학생들이 이곳까지와서 시위를 벌렸고
1949년10월1일 이곳에서 중국의 탄생을 알렸다.
1974년 저우언라이가 사망하자 그를 매도하는 사인방에 맛서

시위를 벌인곳도 이곳이었다.

 

 

 

 

천안문 사건
근본원인의 하나는 그해 4월15일 후야오방의 사망에서 비롯됐다.
후야오방은 덩샤오핑의 차세대로 총망 받았지만 권력싸움에서 밀려 나면서
지식층과 학생들의 동정을 받았다.

그가 죽자 지식인을 중심으로 후야오방의 명예회복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빈번히 일어났다.
(이과정에서 학생시위에 동조적이던 공산당 총서기자 오쯔양 이 실각하고

강경파인 양상쿤 국가주석과 리펑 국무원부총리등이 주도권을 잡았다)
1989년 5월13일이래 전국에서 모인 학생대표들과 함께 천안문광장에서 단식 연좌시위를 계속했다.
 17일 발생한 100만명이 넘는 대규모 시위로 베이징 시에 계엄이 선포되고

6월3일밤 인민해방군 27군을 동원, 천안문광장의 시위군중을 무차별 살포로 살상항 끝에

해산 시켰으며, 시내 곳곳에서도
수천명의 시민, 학생, 군인들이 시위진압 과정에서 죽거나 부상 당했다.
이후 실질적인 지휘자인 장쩌민이 중국권력의 핵심으로 부각하고

사건 관련자들은 국외로 도피 하거나 실형을 사는 고통을 겪었다.

 

 

 

 

 

 

 

 

 

 

 

 

 

 

 

이 다리를 지나 물을 건너가면 황금지붕의 자금성이 기다리고 있다.